‘장애인차별철폐의날’을 맞아 장애인들이 국회에 목소리를 높였다. 21대 국회는 한 달 반도 채 남지 않았고, 22대 총선 선거일은 열흘 남짓 지났다. 22대 국회는 내달 30일에 개원한다. ‘장애인차별철폐의날’을 하루 앞둔 19일, 장애인들은 21대 국회와 22대 국회에 장애인권리입법을 촉구했다.

이날 오후 5시,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아래 420공투단)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가 서울 마로니에 공원에서 ‘돌격, 국회로! 장애시민 국회 돌격대회!’를 진행했다.

- 21대 국회에 묶여 있는 장애인권리법안들

현재 21대 국회에는 주요한 장애인권리법안 네 개가 계류되어 있다.

첫 번째는 장애인권리보장법안이다. 장애계는 지난 10여 년 동안 장애인권리보장법을 줄곧 요구해 왔다. 그 성과로 21대 국회에서 장애인권리보장법안은 세 개가 발의됐다. 김민석·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안, 장혜영 녹색정의당 의원안이 그것이다. 법안 내용은 조금씩 차이가 있다. 이중 장애계가 원하는 내용을 가장 잘 담고 있는 법안이 2021년 9월에 발의된 장혜영 의원의 법안이다.

장애인을 시혜적·동정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닌 권리의 주체로 규정하고, 장애를 의학적 관점이 아니라 사회적 억압과 배제, 차별의 현상으로 보는 법이다. 의학적 정의에 따른 장애인등록제를 폐지하고 ‘장애서비스 이용자’라는 규정으로 장애서비스 및 권리옹호가 필요한 모든 사람이 서비스를 지원받을 수 있도록 했다. 노동권, 탈시설권, 자립생활권, 교육권, 참정권 등 장애인의 다양한 권리들을 법률로서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이를 보장하기 위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을 명시함으로써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따른 당사국으로서의 책무를 이행할 것을 법으로 정하고 있다.

두 번째는 장애인탈시설지원법안이다. 2020년 12월,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했다. 법안은 장애인이 독립된 주체로서 ‘탈시설’해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에서 ‘탈시설’은 장애인생활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이 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에 통합되어 개인별 주택에서 자립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받으며 자율적으로 살아가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또한 장애인이 거주하는 시설의 인권침해 실태를 적극적으로 조사하고, 인권침해가 발생한 시설과 그 운영법인을 효과적으로 제재할 수 있는 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10년 내 모든 장애인거주시설을 폐쇄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세 번째는 장애인평생교육법안이다. 2021년 4월, 유기홍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데 이어 2022년 2월, 조해진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발의했다. 발의 당시, 두 의원 모두 국회 교육위원장이었다. 법안의 중요성과 필요성에 여야 이견 없이 동의한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21대 국회가 끝나가는 현재까지 법안은 제정되지 못하고 있다.

장애인의 평생교육 참여율은 고작 0.2%~1.6%에 그친다. 전체 성인의 평생학습 참여율 43.4%와 비교해 큰 차이가 있다. 따라서 법안은 학령기 때 교육받지 못한 성인 장애인을 대상으로 평생교육을 ‘권리’로서 보장하고, 국가와 지자체의 책무성을 강화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를 위해 장애인평생교육 전달체계를 구축하고, 교육-고용-복지를 연계하는 내용 등을 명시하고 있다.

네 번째는 중증장애인공공일자리지원특별법안이다. 2023년 5월,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했다. 전장연 등 장애계는 재활 중심의 장애인 노동 패러다임을 벗어나 ‘가장 노동능력이 없다’고 평가받는 최중증장애인을 국가와 지자체가 우선 고용하여 일자리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이들이 이야기하는 일자리란 ‘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아래 권리중심공공일자리)’다.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가 대한민국 정부에 ‘장애인 인식개선을 위해 국가와 지자체가 노력해야 한다’고 한 권고를 근거로, 공공이 고용한 최중증장애인이 협약을 홍보하고 장애인 권리를 모니터링하는 일자리다. 중증장애인 노동자는 3대 직무(권익옹호활동, 문화예술활동, 인식개선활동)를 통해 이 업무를 수행한다.

2020년 7월, 서울시를 시작으로 경기도, 전라남도, 경상남도, 강원도 등에서 시행하고 있는 권리중심공공일자리는 현재 지방자치단체 조레를 근거로 시행하고 있어 고용이 불안정하다. 이번 서울시 사태처럼 시장이 바뀌면 사업 자체가 폐지될 위험도 높다. 이에 중앙정부 차원에서 제도화될 수 있도록 최소한의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지역적 차별을 해소하고 중증장애인일자리에 대한 안정적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법안이 입법됐다.

- 해고노동자 이수미 “해고는 살인, 그러나 우리는 죽지 않고 싸울 것”

이날 오후 2시, 권리중심공공일자리 해고노동자 4명은 원직복직을 요구하며 서울시청 앞에서 삭발했다.

이수미 ‘서울시 권리중심공공일자리 해고 철회 및 원직복직 투쟁을 위한 범시민대책위원회’ 활동가도 그 중 한 명이다. 이 활동가는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권리중심공공일자리 폐지 철회와 해고자 원직복직을 요구하기 위해 이영애, 김탄진, 구용호 동지들과 함께 삭발을 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2008년 한국 정부가 비준한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을 이행하라는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의 보고를 무시하고, 결국엔 권리중심공공일자리까지 폐지하고 400명의 노동자를 해고했다”고 말했다.

이 활동가는 “해고는 살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죽지 않고 싸우겠다. 끈질기게 오세훈 시장과 맞서 싸우겠다”면서 “22대 국회에도 책임을 묻고 싸우겠다. 4년은 너무 길다. 1년 내로 중증장애인공공일자리지원특별법 제정을 쟁취하자자. 연대해 주시는 분들과 함께 투쟁하고 싶다”고 호소했다.

- 조민제 교장 “장애인평생교육법, 지금껏 못했다고 앞으로도 못하란 법 없어”

조민제 질라라비장애인야학 교장은 “21대 국회에 2019년부터 꾸준하게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가 열심히 농성하고 투쟁하며 제정해달라고 했던 법이 하나 있다. 바로 장애인평생교육법이다”고 말하며, “2020년 어렵게 국회에서 법안 초안을 발표하는 토론회를 시작으로 2021년에는 더불어민주당 유기홍 의원과 2022년에는 국민의힘 조해진 의원이 장애인평생교육법안을 발의했다. 작년부터는 국회 교육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세 차례나 논의가 진행되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다 보니 정권이 바뀌고, 정권이 바뀌니 교육부의 입장이 바뀌고, 법안을 강력하게 밀겠다던 국회의원들도 소극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조민제 교장은 “결국 장애인평생교육법이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했지만, 지난 5년 동안 통과시키지 못했다고 다음 국회에서 통과시키지 못하란 법은 없다. 22대 국회에서 투쟁으로 반드시 장애인평생교육법을 통과시키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 민주당 등 장애인권리입법에 지지 표해 “연대하겠다”

장혜영 녹색정의당 의원(원내대표 직무대행)은 “일부 정치인들은 우리를 인간 취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인권이란 모두에게 평등한 것이고, 장애인에게 인권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나머지 사람들의 인권은 인권이 아니라 특권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외쳤다.

이어 “이제까지 있었던 모든 정권들이 중증장애인도 인간으로서, 시민으로서, 노동자로서 일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들지 못했다. 하지만 이곳에 계신 여러분이 해냈다. 바로 권리중심공공일자리다”라면서 ”권리중심공공일자리를 만들어냄으로써 중증장애인들도 노동할 수 있는 엄연한 시민이라는 것을 알려냈다”고 말했다.

장애인을 비롯해 소수자 인권 보장을 위해 힘써온 녹색정의당은 22대 국회에 원내 진출에 실패했다. 장 의원은 “녹색정의당은 원내 진입에 실패했지만, 국회 밖 동지로서 장애인들과 함께 투쟁하겠다”고 결의를 다졌다.

이외에도 오준호 새진보연합 상임대표 직무대행이 자리에 함께했으며, 직접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당대표가 발언 대독으로, 윤희숙 진보당 상임대표, 이백윤 노동당 당대표가 영상을 통해 ‘돌격, 국회로! 장애시민 국회 돌격대회!’에 지지를 표하며, 장애인권리입법에 함께 연대할 것을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