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는 투표하러 가고 있습니다. 투표하러 가는 길을 막지 말아주십시오.”
22대 총선 사전투표 첫날인 5일, 중증장애인들이 “장애인시민권에 투표해달라”고 호소하며 휠체어에서 내려 사전투표소로 기어갔다. 그러나 경찰은 이를 공직선거법상의 “소란”으로 규정하고 이들을 방패로 막아섰다.
5일 오후 4시 30분, 이화동주민센터 앞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소속 활동가 20여 명이 모였다. 전장연은 지난 1일부터 매일 아침 8시, 지하철 내에서 ‘포체투지(匍體投地)’를 하고 있다. 전장연은 “오체투지가 불가능한 중증장애인이 땅을 기어서(기어갈 포匍) 자신의 권리를 외치는 중증장애인의 시민불복종행동”이라고 ‘포체투지’를 설명했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포체투지’ 진행에 앞서 “23년을 외쳤지만, 여전히 장애인들은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며 감옥 같은 시설이 아닌 지역에서 함께 살아갈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고 외쳤다.
- 경찰, 공직선거법 근거로 장애인의 투표권 행사 막아
사전투표소인 이화동주민센터로 가는 도로 위에서 박경석 대표와 배재현 장애인자립생활센터판 활동가가 ‘포체투지’를 진행했다. 이들은 비장애인 활동가들의 지원을 받아 거칠은 아스팔트 바닥에 “장애인도 시민으로 이동하는 시대로”라고 적힌 피켓을 바닥에 깔고 느리게 기어갔다. 기어가면서 이들은 “장애시민권리에 투표해 주십시오”라고 적힌 스티커를 아스팔트 바닥에 붙였다.
그러나 혜화경찰서는 공직선거법 166조(투표소내외에서의 소란언동금지) 1항을 근거로 이들의 사전투표소 진입을 막았다. 이들의 ‘포체투지’가 ‘소란한 언동’에 해당하고,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를 지지 또는 반대하는 언동’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법에 따르면 투표소 100미터 안에서 이러한 행동은 금지된다.
제166조(투표소내외에서의 소란언동금지 등) ①투표소안에서 또는 투표소로부터 100미터안에서 소란한 언동을 하거나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를 지지 또는 반대하는 언동을 하는 자가 있는 때에는 투표관리관 또는 투표사무원은 이를 제지하고, 그 명령에 불응하는 때에는 투표소 또는 그 제한거리 밖으로 퇴거하게 할 수 있다. 이 경우 투표관리관 또는 투표사무원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때에는 정복을 한 경찰공무원 또는 경찰관서장에게 원조를 요구할 수 있다.
이에 박경석 대표는 “우리의 ‘포체투지’는 ‘소란’하지도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를 지지 또는 반대’하지도 않는다. 그저 ‘장애인시민권’에 투표해달라고 시민들에게 호소하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경찰은 방패를 들고 사전투표소로의 진입을 막아섰다. 박 대표는 경찰 방패에 가로막히자 “장애시민권리에 투표해 주십시오”라고 적힌 스티커를 경찰 방패에 붙이기 시작했다. 경찰은 그가 붙이는 스티커를 거칠게 떼어냈다.
경찰이 “이러한 행위는 공직선거법에서 금지하고 있다”고 하자, 박 대표는 “‘장애시민권리에 투표해 주십시오’라는 문구가 특정 후보를 비난하는 거냐”고 물었다. 해당 경찰이 “여기에 대해 제가 대표성을 갖고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답하자, 박 대표는 “그러면 선관위가 나와서 답하라”고 요구했다.
경찰은 “공직선거법 166조 말고 58조의2를 보면 ‘사전투표소 100미터 안에서 투표 참여 권유는 금지하고 있다”며 다시 한 번 ’포체투지‘의 위법성을 강조했다. 이에 박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은 오늘 사전투표하면서 투표소에서 사전투표를 독려하는 인증샷도 찍었다. 언론에 나오고 페이스북에도 올라왔다. 그런데 우리는 왜 안 되나. 비켜달라”고 바닥을 기어가며 재차 호소했지만, 경찰은 비켜서지 않았다.
- 종로구선관위 “장애인들이 기는 행위, 유권자들에게 불안감 조성해 금지”
결국 경찰의 저지로 사전투표를 하지 못한 박경석 대표는 뒤늦게 현장에 온 박병철 종로구선거관리위원회(아래 종로구선관위) 공정선거지원단과 이야기를 나눴다. 종로구선관위 측은 경찰이 말한 공직선거법 166조, 58조의2와 더불어 164조 1항을 근거로 ‘포체투지’가 위법하다고 말했다. “장애인들의 ‘포체투지’ 즉, 기어가는 행위가 유권자들에게 불안감 또는 불편함을 제공할 수 있어 166조에서 말하는 ‘소란’에 해당한다”는 것이 종로구선관위 측의 주된 주장이다.
제164조(투표소 등의 질서유지) ①투표관리관 또는 투표사무원은 투표소의 질서가 심히 문란하여 공정한 투표가 실시될 수 없다고 인정하는 때에는 투표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정복을 한 경찰공무원 또는 경찰관서장에게 원조를 요구할 수 있다.
이에 전장연은 종로구선관위 측에 ‘포체투지’를 금지하는 이유를 공문으로 요청했고, 종로구선관위는 오는 6일까지 전장연 측에 답하기로 했다.
‘포체투지’는 사전투표가 끝나는 오후 6시까지 이어졌다. 박경석 대표는 “대한민국에서 기어서 투표하는 것을 금지한 법은 없다. 경찰은 공직선거법을 핑계로 장애인도 함께 살아가자고 호소하는 ‘포체투지’마저 불법적으로 막았다”고 말하며 “오늘 하루 경찰이 막아섰다고 ‘장애인도 시민으로 이동하는 시대’를 막을 수는 없다. 내일 다시 ‘포체투지’를 하며 사전투표하러 가겠다”고 밝혔다.
한편, 경찰은 사전 고지 없이 활동가들을 채증하고, “우발 상황 시 현행범 체포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로 ‘장애인버스’를 동원하기도 했다.
출처: https://www.beminor.com/news/articleView.html?idxno=26214
